위대한 경제학자 John Maynard Keynes는 1923년 ‘금리 생활자의 안락사’를 예견1한 바 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국채 투자 자금을 결국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진정되면서 금리 생활자는 부활하고 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의 완화는 채권 시장의 강세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인플레이션 안정화의 동인은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 번째는 기술 혁신 및 아시아 저임금 공장의 본격 가동으로 상품의 저렴한 생산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저렴한 상품의 공급은 인플레이션 안정화의 탄탄한 기반이 됐다2.
두 번째는 전 세계적인 통화 정책의 변화를 지적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통화주의의 기류가 확산되면서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단기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파워 게임에 대한 이해 없는 '현실' 분석은 학문적인 의의는 있을지 몰라도,
정책적 처방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두 가지 동인은 1970년대 중후반 이후 인플레이션이 안정화 국면을 보인 것을 상당 부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인플레이션 시대’의 종언을 설명할 수 있을까? 경제 현상을 경제 현상만으로 보면 이론적인 엄밀함을 추구할 수는 있어도 현실적인 설명력을 확보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경제 현상 역시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이해관계자들의 파워 게임을 이해해야 보다 현실성 있는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3한다.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소위 말하는 ‘정치적인 이유’는 인플레이션의 구조적 요인 중 일부가 취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플레이션의 이해관계자는 크게 ‘①채무자, 임금 노동자(예컨대, 일용직 노동자처럼 임금이 유연성 있게 결정되는 노동자들을 의미한다.), ②채권자, 고정급 및 연금 생활자’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 인플레이션의 발생은 채무 탕감을 의미하거나, 협상을 통한 임금의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회피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인플레이션이 반갑거나, 최소한 지독한 공포의 대상은 아니다. 후자의 경우, 인플레이션은 강도(强盜)와 같다. 수입이 고정적인 사람들에게 물가 상승은 곧 수입의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Buenos Aires Florida St.의 모습. 과거의 영광이 남아있는 듯 하지만 뭔가 쓸쓸하다.
Tango에서 느껴지는 애수도 Argentina가 겪었던 경제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자의 힘이 강한 혹은 전자의 이해관계가 강력하게 작용한 경우 대규모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20세기 초∙중반의 아르헨티나(Argentina)를 살펴보도록 하자. 20세기 초반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었다. 영미권 국가를 제외하면 아르헨티나보다 잘 사는 나라는 덴마크(Denmark), 벨기에(Belgium), 스위스(Switzerland), 네덜란드(Holland) 정도뿐이었고, 세계 최고급 백화점인 영국의 해러즈 백화점(Harrods store)은 세계에 단 두 곳, 런던(London)의 나이트 브릿지(Knight Bridge)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의 플로리다 거리(Florida St.)에만 존재4했다.
이처럼 번영을 구가하던 아르헨티나는 인플레이션의 폭격을 맞고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처럼 아르헨티나에서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던 데에는 과두 정치 세력, 군사 독재자, 노동 조합, 데스카미사도(Descamizados)5 등 가격 안정에 큰 관심이 없었던 사회적 세력들의 강력한 단합이 있었기 때문6이다.
고령화 등으로 인한 금리생활자의 증가는
inflation을 점점 정치적으로 어려운 선택으로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2011년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2011년의 세계 경제를 보면 노조의 영향력은 약해졌고, 채권의 안정적인 수익률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음을 목격할 수 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연기금 및 저축 기관들이 자산의 상당 부분을 정부 채권 등에 투자하고 있으며, 금융위기 이후 이러한 안정적인 성향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연기금 등에서 연금 및 금리를 받아 생활하는 ‘금리 생활자’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이들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 나아가 세계 각국의 평균 수명이 증가하고 이들이 금리 생활자의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하면, 인플레이션에 반대하는 자들의 정치적인 목소리는 보다 더 강화될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방치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더 이상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 Keynes의「A Tract on Monetary Reform」을 보면 Keynes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을 검색하는 수고를 들이면, 원문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본문으로]
- 특히 아시아 저임금 노동력의 상당수는 중국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중국의 경제 발전으로 중국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할 때, 이것이 세계 경제에 미칠 파급 효과에 대한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본문으로]
- 동일한 경제 현상에 대해 경제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이 다소 상이한 설명을 하기도 하는 것은 이러한 관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설명이 타당한지, 어떠한 설명이 적절한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인 것 같다. [본문으로]
- 「The Ascent of Money: A Financial History of the World」, Niall Ferguson, pp.110~130을 참조했다. [본문으로]
- 스페인 어로 shirtless(헐벗은 자)를 의미한다. 아르헨티나의 엘리트 계층이 20세기 중반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적인 지도자 Juan Perón을 따르던 빈민층을 경멸적으로 지칭하던 용어이다. [본문으로]
- 「The Ascent of Money: A Financial History of the World」, Niall Ferguson, pp.110~130을 참조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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