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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주변에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오히려 외로운 이웃들이 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서 이래저래 바쁜 일이 많았다. 작년까지는 나의(my)” 가족을 챙기고, "나의" 여자를 챙기는 일에만 신경을 썼다. 올해는 시야를 확대 해보기로 했다. “나의라는 범주 안에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도 충분히 가지면서, “나의라는 범주 밖에 있는 사람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성탄절을 지내보고자 하였다. 그러한 나눔의 일환으로 올해 포이동[각주:1]에서 일일 산타 봉사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봉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에는 한국 최초의 Rotaract 청소년 지부를 설립하기도 했고, 한 달에 2번 씩은 고아원에 들러서 손 터져가면서 물걸레 짜고, 마당 쓸고, 아이들이랑 축구하면서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그 이후로 나의 더불어 살아가는 감수성은 급격하게 퇴보했던 것 같다. 대학 입학 이후부터는 봉사를 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가끔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연말에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내기는 했지만 자발성이 결여된 성금이었고, 무엇보다도 돈으로 때우고 보자는 얄팍한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기에 나는 이를 봉사 혹은 남과 함께 마음을 나눈 것이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고 한다. 갑자기 내가 봉사하는 생활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한국 교육 제도는 고등학교 때까지 두터운 장막을 통해 아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킨 채, 단순한 학과 공부에만 매달리도록 유도한다. 아니 강요한다.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이러한 두터운 장막은 해체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갑자기 사회라는 곳을 접하게 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전형적인 한국식 교육을 받고 자란 나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그 전까지 선생님의, 부모님의 얘기를 통해 들어만 봤던 사회라는 곳을 대학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내 눈과 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는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이러한 류의 보여주기 식, 마케팅 식 봉사 활동이 너무 싫었다.

   안타깝게도 이 때 흔들린 생각 중에 하나가 봉사 활동에 대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봉사가 단지 "좋아서" 했었던 것 같다. 요즘처럼 봉사 활동이 대입에 반영되지도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반대급부를 원한다는 생각도 없었고, 고아원에 맘에 드는 여자 아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그냥 보잘 것 없는 내가 남을 기쁘게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뻤을 뿐이었다. 그런데 대학 입학 후, 개인적인 부정 및 비리로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대기업 총수라는 사람들이 1년에 1차례(많아봤자 2차례) 봉사 활동을 해놓고, 무슨 대단한 선행을 한 냥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고 마케팅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심히 마음이 불편했다. 어렸던 나의 눈에는 이들의 행동이 마치 자기의 직업에서 일으킨 물의들을 봉사를 통해 면죄부를 받으려는 것으로 보였고, 나는 이런 식의 봉사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아가 진정한 봉사는 이벤트 성으로 1년에 1~2번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positive impact를 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 후 그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컨대, 사람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데 기여하는 무기 회사 같은 곳에서 일하지 말고사람을 살리는 제약 회사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 회사가 patent를 남용하여 정말로 약이 필요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이 진정하고 지속적인 의미의 봉사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후로, 고아원이나 노인정을 방문하던 나의 발길은 뚝 끊기게 되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고아원에 다녔던 나는 봉사를 하러다니는 사람들은 무슨 꿍꿍이 속에 있을 것이라는 부정적이고 삐딱한 시선을 갖게 되었다. 20세에 형성된 이러한 나의 시각은 나의 20대 시절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음지에서 정말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훌륭하신 분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나의 생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변화가 오늘 드디어 결실을 맺어, 거의 10년 만에 몸으로 뛰는 산타 봉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들의,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의 웃음을 지켜줄 수 있는 것도 큰 행복일 것이다.


   봉사 활동이 과외적인 활동이 되지 않고,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신중한 직업 선택 및 의식 있는 업무 수행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나의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하지만 몸으로 뛰는 봉사가 가식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각주:2]한다. 그리고 설사 가식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가식적인 봉사라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다는 것을 오늘 다시 깨닫게 되었다. 내가 건네주는 선물에 어린 아이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보면서, 내 마음에는, 내 눈시울에는 감동의 눈물이 번졌다. 가식적인 봉사라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 봉사 활동 관계자 분께서 요즘은 봉사 활동을 하겠다는 사람들–특히, 젊은 대학생들–이 현격하게 증가[각주:3]해서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괜히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경제학의 "비교 우위의 논리"로도 봉사의 유용성 내지 필요성은 충분히 설명이 된다. 과연 봉사 활동 이외의 것으로 내가 타인에게 이토록 큰 감동과 기쁨을 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그 대답은 "No"일 것이다. 설마 봉사에 대해 나처럼 삐딱한 시각을 갖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속는 셈 치고 딱 한 번 봉사 활동을 해보시라고 권유하고 싶다. 분명히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고, 생각의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런 것이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로맨스라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분위기 있는 식당," "분위기 있는 공연," "크리스마스 선물" 등이 인터넷 검색어 상위를 차지한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때 가족에게, 연인에게 자신의 사랑[각주:4]을 표현하는 로맨스를 원하고 있고, 꿈꾸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런데 로맨스의 대상이 반드시 "나의(my)"라는 범주 내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올해는, 그리고 다가오는 내년에는 로맨스의 대상을 "나의"라는 범주 밖으로 확장시켜 보자.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도 충분히 사랑을 나눌 수 있고, 가족이나 연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색다른 로맨스를 느낄 수도 있다. 내가 기독교도는 아니지만, 예수님께서도 크리스마스에 가족이나 연인과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이웃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실 것이라고 믿는다.



  1. 타워팰리스 같은 주상복합건물들이 우뚝 솟아 있는 도곡동 옆에 위치한 조그마한 판자촌이 모여 있는 동네가 포이동이다. 소설가 조세희 씨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집필했다고 하는데, 2000년대의 포이동의 상황은 소설의 배경인 197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개발 논리, 배려의 결여, 빈곤의 악순환. 소설 속에서 문제 삼고 있는 1970년대의 사회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 포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양 교육 시간에 위와 같은 포이동의 히스토리를 들으면서, “이 곳에 사는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고 우울할까?”라는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오늘 봉사 활동 중에 만난 포이동 아이들은 하나같이 맑고 밝았다. 학교에서 과외 공부하고, 어린 나이부터 경쟁에 내몰려 순수함에 때가 많이 묻은 우리 동네 아이들보다 훨씬 근심이 없고 깨끗해 보였다. [본문으로]
  2. 굉장히 평범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를 깨닫는 데 거의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본문으로]
  3.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봉사 활동을 그저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고, 봉사자들의 숫자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본문으로]
  4. 물론 그 사랑이 진실한 사랑인지 여부는 차치하도록 하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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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우근